출발이 늦어 차라리 좋았다

버스를 잘못 탔다. 지정된 정류장이 아니라 내려줄 수 없단다. 그곳을 지나는 수많은 버스 중에 왜 하필 나는 여기 올라탄 것인가.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 디지털미디어시티 정류장에 내렸다. 이미 시각은 2시 30분. 애초 약속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늘은 서울둘레길 7코스를 걷기로 했다. 지난 주 ‘어쩌다 시작된 둘레길 소식’을 들은 서어나무님이 응원차 동행해주셨다. 7코스는 가양대교 남단에서 구파발역까지 16.6km 길이로 난이도는 다소 높은 편이라고 한다. 오늘은 산행가능한 시간이 짧아 증산체육공원에서 시작했다.

출발시각은 3시 정각. 일몰까지는 약 3시간도 남지 않았다. 증산체육공원에서 구파발까지는 약 9km. 생각보다 긴 거리라 살짝 걱정이 됐다. 일단 힘차게 스탬프를 찍고 봉산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봉산은 높이 200여 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능선에 오르면 좌우로 서울시 은평구와 고양시 향동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봉산 편백나무 숲
편백나무 치유의숲

숲의 성장을 지켜보며

팥배나무 군락지를 지나자 어린 나무들로 가득한 산자락이 나타난다. 지난 2014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편백나무 치유의숲이다. 7ha 면적에 약 1만 그루가 식재되었다고 한다. 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당장 큰 편익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도심 속에 새로운 숲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 아닐까 한다.

출발 1시간 15분만에 봉산정에 도착. 해도 기울고 바람도 차가워져서 외투를 걸쳤다. 봉산정에서 서어나무님이 준비해온 모과생강차를 마시며 동쪽을 바라보니 북한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 풍경을 좀 더 즐기고 싶었지만 이미 4시 30분, 서둘러 앵봉산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서오릉고개 녹지연결로를 지나자 긴 오르막이 나타난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멈추지않고 나무계단을 올랐다. 이제 구파발까지 남은 거리는 3.7km.

앵봉산
앵봉산 오름길

해넘이와 달맞이를 함께

5시 20분, 앵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마침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이어서 동쪽에서는 북한산 봉우리 사이로 커다란 보름달이 불쑥 올라왔다.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늦게 출발해서 부지런히 걷다보니 해넘이와 달맞이 함께 보는 행운이 따랐다. 사진을 여러장 찍었지만 눈으로 몸으로 전해지는 보름달의 에너지는 잘 담기지 않는 것 같다.

5시 50분, 앵봉산 공원 출입구에 도착해 7코스 두 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낮은 산이지만 처음 걸어보는데다가 출발도 늦었기 때문에, 경험자의 리딩이 없었다면 도중에 내려왔을 지도 모른다. 여러가지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또 버스를 잘못 탔다. 시내로 가야하는데 롯데몰을 돌아 파주방향으로 간다. 이번에는 어떤 행운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서울둘레길은 총 연장 157km, 8개 코스로 ‘숲길’, ‘하천길’, ‘마을길’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생태 등을 스토리로 엮어 국내외 탐방객들이 느끼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도보길이다.

서울둘레길 7코스
서울둘레길 스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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